핵과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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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 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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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구상에서 유일한 원자폭탄 피폭국이다.

그런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전까지만 해도 원자력 발전 세계 4위의 원전 선진국이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어떻게 원폭 피폭국이 원전 선진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을까?

미군 점령기의 검열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히로시마에서 14만명, 나가사키에서 약 70만명이 사망했다. 인류는 처음으로 원자폭탄을 실상을 목격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구호활동이 벌어지던 14일,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9월 2일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군 점령기에 들어갔다. 미군은 원자폭탄의 피해와 관련된 보도를 철저히 검열하고 삭제했다.

특히 점령기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 아동만화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져올 미래를 그렸다.

철완 아톰

출처:나무위키

1950년대의 대중문화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 낳을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테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이 대표적이다. 1952년부터 1968년까지 연재된 '철완 아톰'은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주인공이다. 나도 어릴 때, 즐겨보고, 아톰 로봇을 가지고 놀았을 정도로 좋아했다.

당시 아톰의 인기는 대단했다. 1960년대 TV애니매이션으로 제작되어 시청률이 최고 40%가 넘을 정도였다. 아톰이 원자력으로 움직인다는 설정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가져다주는 눈부신 이미지를 일본에 확산시키기에 충분했다.

고질라

출처:나무위키

1984년 등장한 고질라는 스스로 핵에너지와 방사선을 흡수했다. 고질라가 소련의 원자력 잠수함을 공격한 후, 시즈오카현 '이하마 원전'을 습격해 그곳의 원자로를 끌어안고 방사선을 흡수한다. 고질라가 방사선을 전부 흡수했기때문에 원전 부근은 방사선 오염을 피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고질라에서는 괴수들에 의해 원전과 원자력 시설이 파괴될 위험성이 있지만, 항상 파괴의 위기는 회피된다. 방사성물질도 고질라에게 흡수될 정도이니 원전의 위험성은 전혀 드러나지않았다. 이렇게 일본인들에게 원전의 위험성, 방사선 피해,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인류는 실제 원전의 대규모 폭발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있은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원전 반대 의견이 42%를 차지해, 찬성 의견 34%를 앞질렀다. 원전에 대한 부정적인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앞으로 원전을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뜻밖이었다. 60%의 사람들이 '현재의 원전 수준을 유지해야한다'고 응답한 것이다. 아마도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는 예외이고, 절대 일본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음에 분명하다. 그동안 익숙하게 보고 들어왔던 미디어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다.

후쿠시마 제1원전

2011년 3월 11일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동북지역을 덮쳤고,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을 시작으로 2호기, 4호기가 연이어 폭발했다. 대량의 방사선과 방사성물질이 발전소밖으로 퍼져나갔고, 지금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그동안 만화나 TV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 원자력발전소가 위기를 맞아도 그것은 언제까지나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인공이 모든 위기를 해결하는걸 보여줬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나도,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거라고 굳게 믿어왔다. 하지만 2011년 3월 그러한 일본인의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70%에 달하는 시민들이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야한다고 대답했다.

일본인의 양면성

하지만 일본은 다시 원전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려한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위해 정부는 원자력 발전의 재가동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정재계의 원전 마피아들은 원전 재가동을 밀어부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경험했기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하게 원전을 운용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다. 반대측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했기때문에 원전에서 손을 떼자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 이후부터 일본내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는 줄곧 대립해왔다. 하지만 항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어정쩡한 현상유지를 택하며 원전을 가동해 온 셈이다.

핵과 일본인의 저자 야마모토 아키히로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일본인의 이러한 양면성을 지적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애도하며 핵무기와 핵보유국을 증오하면서도,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아래에 있다면 핵무기의 표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또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가동하고 있는 원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며 그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없는 아파트

그런데 원전에 대한 양면적인 태도는 비단 일본인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이웃나라의 참상을 목격했지만 여전히 남의 일로 생각할 뿐이다.

일본과는 달라, 우리는 안전하다는 믿음이야말로 어쩌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일본의 오염수 해상 방류를 비판하지만, 정작 우리 원전에서 매일 쏟아져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와 보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원전의 위험성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문제는 전 지구적인 문제다. 인류 문명의 존속에 관한 문제다. 최소 10만년을 격리 보관해야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떠안은 지구야말로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살 수 있을까?

원전의 안전성과 방사성폐기물 처리에 관해 더 깊이 토론, 논술하고 싶다면

일본을 알면 진로가 보인다가 궁금하시다면

브라이언
브라이언 교육·학문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합니다. 교사, 작가, 투자가, 아빠로 살아가는 자유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