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4번의 변곡점(그해, 역사가 바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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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2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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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인간이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지질 시대로 접어들었다며, '인류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만큼 인류가 자연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건데요.

'그해, 역사가 바뀌다'의 저자 주경철은 인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결정적인 변곡점이 역사상 4번 있었다고 말합니다. 1492년, 1820년, 1914년, 1945년이 그것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독학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게 된 사람입니다. 그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당시만해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막 등장해서 책을 통해 지식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 였는데요. 책은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기때분에 왕실, 왕립 도서관이나 귀족 혹은 학자들만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평민 선원인 콜럼버스가 책을 상당히 많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콜럼버스의 주석이 담긴 책

또 그는 책을 읽으면서 거침없이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주석으로 써 놓았다고 해요. 이것 역시 예외적인 일이었죠. 특히 그가 관심을 둔 부분은 지구의 크기였습니다. 책을 읽다가 지구의 크기가 작다라는 말이 나오면 많은 주석을 달았다고 합니다. 육지와 바다의 비율이 6대 1이라는 부분에는 특히 매료되었다고 하죠. 즉, 그는 죽을 때까지 지구는 작고 바다의 면적 또한 매우 작을 것이라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연히 지구가 작고, 바다가 좁다고 주장하면 항해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콜럼버스는 자신의 믿음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을 설득하여 항해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가는 자' 라는 뜻의 콜럼버스의 서명

후에 그는 "자신은 하느님이 선택하신 도구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모세 수준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3차 항해 때는 자신이 도착한 남미대륙의 '오리노코 강'을 에덴 동산의 입구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어찌보면 그의 잘못된 지식과 중세 종교적인 세계관에서 출발한 항해가 신대륙 발견이라는 세계사의 엄청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820년

산업혁명과 유럽의 패권장악

유럽이 아주 일찍부터 패권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중국, 인도 등의 경제수준이 17~18세기만 해도 결코 유럽에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유럽이 완전히 앞서가게 된 것은 1820년 이후의 일이죠.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 말은 미국의 해군 제독 앨프리드 머핸이 한 말입니다. 15세기까지 중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대선단을 꾸려 인도양 세계를 탐험하는 '대항해'를 정화에게 맡겼어요. 정화는 명나라 초의 환관이었지요. 1405년에 시작된 정화의 대항해는 1433년까지 일곱차례나 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놀라운 것은 이때 정화가 끌고 간 선박의 사이즈가 무려 130m의 길이였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축구장 크기입니다. 이런 배를 250척을 이끌고 항해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탐험한다고 끌고 간 산타마리아는 고작 테니스 코트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강한 해양력을 가지고 있던 중국은 1433년 이후 바다를 버립니다.

해금 정책을 펴서 허락없이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했고, 해군을 육군이나 노무자로 돌렸습니다. 수도 또한 북경으로 천도했고요. 그 이유는 북방 유목 민족세력때문이었습니다. 북방 유목민족의 위협을 방어하며, 바다로 팽창하기 어려우니 바다를 버리고 북쪽의 위협에 대비하는게 더 낫다는 판단이었어요.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중국이 세계사의 무대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유럽,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 비교

물론 그후 1820년까지는 중국이 인구 규모나 경제 규모에서 유럽에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820년 산업혁명이후, 영국이 면직물 등의 물품을 기계로 대량생산하여 전 세계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제조업 생산량도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대분기'라고 표현하는데, 1820년을 기준으로 서구와 비서구 지역 간의 생활수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때부터 유럽과 미국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쥐게 됩니다.

유럽, 중국의 GDP 점유율 변화

산업혁명의 핵심은 새로운 에너지원, 석탄의 사용입니다. 영국은 석탄이 풍부했어요. 물론 중국도 석탄은 있었지만, 산업 중심지와 석탄 매장지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로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유럽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원이 등장하고, 증기기관이라는 기계화가 시작되면서 혁신이 일어났어요. 이 혁신을 발판삼아 유럽, 즉 서구가 세계의 경제적인 패권을 차지하게 되는거죠.

1914년

나그네 비둘기의 멸종

문명화란 숲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중세만 해도 유럽은 광대한 숲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은 숲을 없애고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문명이라는 뜻의 단어 'Civilization'은 도시를 뜻하는 말 ' Civitas, 키비타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도시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은 숲만이 아닙니다. 동물들의 멸종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요. 1914년은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파나마 운하가 개통된 해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 바로 엄청난 개체 수를 자랑하던 '나그네 비둘기'가 인간에 의해 멸종된 해이기도 합니다.

개체 수 10조에 달했다가 멸종된 나그네 비둘기

인간에 의해 멸종된 동물의 사례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게, 바로 '나그네 비둘기(Passenger pigeon)'입니다. 나그네 비둘기는 19세기까지 북아메리카에서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동물 중 하나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866년 캐나다 남동부 온타리오 주에서 하늘을 날아가는 이 새들을 목겼했는데, 당시 새 떼는 폭이 1.6km, 길이가 420km의 장관을 이루며 14시간에 걸쳐 날아갔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새떼가 하늘을 덮고 있어 어두컴컴했다고 할 정도였죠. 총을 한 발쏘면 30~40마리가 잡히고, 나뭇조각만 던져도 여러 마리를 잡을 정도였다고 해요. 당시 나그네 비둘기는 수십억 마리에서 수조 마리에 달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이 새가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이유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인디언들이 유럽인들에 의해 쫓겨난 것이 원인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즉, 천적이 사라진거죠. 이렇게 어마어마한 개체 수를 자랑하던 나그네 비둘기는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그 수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맛이 좋아 식용으로 대량 사용하기도 했고, 사격 연습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결국 1914년 신시내티 동물원에 있던 '마사'라는 이름의 나그네 비둘기를 끝으로 멸종하게 되었습니다. 나그네 비둘기의 멸종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자연은 인간의 손을 타기 시작했으며, 인간에 의해 변화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945년

야만화, 섬멸의 전쟁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전쟁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해는 3년밖에 안 될 정도니까요. 산업 혁명이후에는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 전쟁의 강도가 더욱 커지면서 희생자 수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19세기 중반이후로 가면 유럽 내에서는 전쟁이 줄어듭니다. 대신 유럽은 식민지 대륙에서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모든 국가가 자국 경제를 지키기 위해 관세전쟁을 벌이게되며 국제적인 갈등을 유발합니다. 이러한 갈등이 악화된 결과 1,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어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부터는 살인의 대량화, 기계화, 산업화가 일어납니다. 십자군 전쟁처럼 1대1로 싸우는게 아니라, 기관총, 탱크, 미사일이 등장하고 비행기를 이용해 폭탄을 투하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사자 수는 무려 5500만명에 달합니다. 특히 군인 이외의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합니다. 베트남 전쟁때도 군인보다 민간인 사망자의 비중이 높았으니까요. 심지어 한 나라의 국민을 완전히 몰살 시키겠다는 '인종청소'까지 불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대학살,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대학살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죠. 가공할 핵무기도 2차례 사용되었고, 이제 지구 전체를 날려버리고도 남을 핵무기를 가지게 되었어요.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이런 20세기는 증오에 기반한 대학살의 시대라고 정의내렸습니다.

문명의 시대인가? 야만의 시대인가?

20세기를 증오의 시대, 야만의 시대라고 표현한 니얼 퍼거슨과는 정반대의 시각을 가진 학자가 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인데요. 그는 인류가 문명의 진보에 따라 비폭력과 평화의 길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저서 '우리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지금이 예전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며, 현대사회는 예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비폭력적이다" 라고 주장하는데요. 그 이유로 전쟁의 주체인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국가성립이전과 이후의 전쟁 사망자 비교

국가는 전쟁을 주도하는 주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전쟁을 통제하는 주체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수치로 전쟁 사망자 수와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제시합니다. 과거, 국가가 성립되기 이전(비국가) 사회에서의 사망자 수가, 국가 성립이후의 사망자 수보다 월등히 많았다면서 말이죠.

또 그는 국가가 성립되고 학교 교육과 사회의 예절 교육이 시작되고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내면 속의 폭력성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이 폭력을 포기하면서 점차 국가가 그 폭력을 독점할 수 있게 된거죠. 또 시장경제의 발전 또한 인간의 폭력성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고 전쟁을 했지만, 지금은 싸움이 아닌 거래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인류는 문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야만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그동안 배우고 지켜 본 역사를 통해 보면, 과거보다 현대로 올 수록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이 두드러진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2번의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불과 20년 전,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9.11테러라든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더라도, 문명화로 오히려 폭력성이 줄어든다는 핑커의 주장이 조금은 낯설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증오와 폭력, 야만을 넘어서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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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교육·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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